사과의 기술(art of apology).

사과까지는 좋은데, 기술이라고 붙이고 나니, 좀 어색한 감도 없잖아 있다. '기술'이란 말이 '조작적'이라는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과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어쨌든,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심이 빠진 사과는 그 어떤 기술로도 진정한 사과로 만들 수 없다. 사과의 기술이 발휘될 수 있는 가장 기본은 진심(sincerity)이다.

위기의 상황이란 관계에 '상처'가 난 상태이다. 사과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상처난 관계를 치유하는(healing) 역할을 할 때이다. 사과의 기술이란, 바로 진심을 바탕으로, 그 진심이 사과를 받는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윤석화씨의 사과를 접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나,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상처가 치유되기에는 다소 사과가 미흡하지 않았나, 라는 점이다.

윤석화씨의 고백을 '사과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난 느낌을 이야기해본다.

1. Timing: 사과의 시점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고백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용서를 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타이밍이 썩 좋지는 않았다(이지영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계 인사들의 학력위조로 검찰까지 나선 시점에서 사과를 한 것에 대해 그 순수성이 충분히 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의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고백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수 있다는 압박이 오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잘못이나 실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과는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자발성이 보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사과를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결국 사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 Complete Apology-Intention: 그렇다면, 학력을 위조했고, 안타깝게도 지난 30년 동안 사과할 기회를 놓쳤고, 예술계에서 학력위조 파문이 일고 있어, 지금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사과의 timing을 놓치고,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달리말해서, 이런 상황(김옥랑씨의 학력위조 파문)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자신은 사과를 평생 안했을지도 모른다면, 그 때는, 자신의 사과행위가 100% 순수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사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윤석화씨가 자신의 사과 타이밍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과의 때가 너무 늦었음을 잠시 언급했다.

"어릴 적, CM송을 부르던 시절에, 철없이 했던 거짓말이 30년 세월 동안 제 양심의 발목을 잡았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고백'의 '때'를 생각했지만... 결국, 용기가 없어 주저하는 사이 이 '때'에 이르게 되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에 나온 윤석화씨 사과문 중)

가정이지만, 만약,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이런 고백을 영영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솔직히, 저의 경우도 남들에 의해 밝혀질까 두려웠습니다. 보다 더 순수한 순간에, 보다 더 순수한 마음에서 사과하지 못한 저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여러분께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3. Complete Apology-Contents: 윤석화씨의 고백이 공개되고 나서, 뉴욕대 학력도 의심을 받고 있다. 그녀의 뉴욕대 학력이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사실이 아닐 경우라면, 사과의 내용이라는 완전성에서도 결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과란 bad news를 전달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bad news를 good news로 전환하는 노력이다. Bad news를 전달할 때는 '원 샷'에 하는 것이 깔끔하다. 즉, 한 번에 모두 끝내서, 뒤에 '찜찜한 것'이 사과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에 남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그녀의 '뉴욕대' 학력과 관련하여, 신동아 2005년 5월(통권 548호, 440-457쪽) 기사 <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연출자가 그에게 유학을 권유했다.

'너는 공부를 더 하면 좋겠다. 나는 가끔 너한테 진짜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너는 작품에서 집어내더라. 그런데 우리 사회는 디그리(degree·학위)가 없으면 아무리 옳고 바른 소리를 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너 같은 사람에겐 꼭 디그리가 필요해.'

'연극계에서 제가 알려질 만큼 알려졌을 때였어요. ‘주간여성’ 표지에도 나가고 언론 인터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학부를 4, 5년 다니고 나면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연극을 평생 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미래를 위해 4년이든 5년이든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과감하게 미국으로 떠났죠.'

윤석화는 마침내 뉴욕대 공연학 학사 ‘디그리’를 안고 귀국했다."



지금 기사에 나온 것을 보면, 뉴욕시립대(City University of New York)를 신동아 기사에서 보듯이 뉴욕대(New York University)라고 가끔씩 이야기했나본데,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윤석화가 제대로 이야기했는데, 미국의 대학 시스템을 잘못 이해한 기자가 잘못 썼을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윤석화가 NYU로 인식되기를 바라면서, '뉴욕대'라고 슬쩍 이야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참에 미국에서의 대학 학력을 이야기할 때, 당사자나 기사를 쓰는 기자나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2년간 살았던 위스콘신(Wisconsin)주에 보면, 위스콘신 주립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만 해도, 캠퍼스가 13개에 달한다. (UW System 홈페이지 참조) 일반적으로, 가장 인정받고 유명한 캠퍼스는 그 13개 중 한 곳인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이다. 미국 학력을 이야기할 때, 자신의 캠퍼스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는 본교와 분교를 차별한다는 문제점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미국 대학에 대한 '신뢰'가 많은 곳에서, 자신의 '간판'을 과장하는 풍토를 바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내가 한 학기(first quarter) 마치고 중퇴한 University of Washington(Seattle)이 있는 워싱턴주에는 Washington State University라는 곳도 있다. 모두, '워싱턴 대학'이라고 혼동될만하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리더들이 자신의 미국학력을 이야기할 때, 보다 분명히 이야기하고, 기자들도 괄호를 이용해서라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어떨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간판을 강조하는 부작용도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만약, '뉴욕대' '디그리'에 있어서도 윤석화씨가 과장하거나 속인 부분이 있다면, 이는, 이번 사과에서 모두 고백했었어야 했다. 뒷끝이 없는 보다 완전한 사과를 위해서말이다.

* 여기서, 잠시 관련되는 또 한 가지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 2-3년간 한 병원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그 곳에서 강의 시작 전, 나를 소개할 때마다 "워싱턴 대학 박사"라고 소개를 해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그 때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강하는 의사분들께, 사실을 정정하느라 다소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강의 끝나고나서, 어떤 의사분이 내게 와서 "아, 저도 워싱턴 대학에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까지 사실 정정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강의 시작전에 모두 앞에서 고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혹은, 다른 기관에서는, 강의자로 나를 소개하면서, 박사과정 한 학기 수료한 것을 그냥 "워싱턴 대학 박사과정 수료"라고 소개한 적도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이해하는 수료란 논문만 쓰지 않고 수업(course work)을 모두 마친 상태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이런 경우에도 '한 학기 수료'라든지 하는 식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부의 경우, 자신들의 모임이나 행사에 초대한 사람이나, 취재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의 약력을 과장하는 경우가 있다. 정덕희 교수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는 것 같은데, 당사자인 자신이나, 이를 소개하는 언론사나 타 기관에서도, 정확성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2005년 신동아에 실린 윤석화 인터뷰 기사를 보니, 소제목에 이렇게 나와있다. "내용 좋은데 흥행 안 된 작품? 그건 '마스터베이션'이죠"라고. 이젠, 이렇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자질이 좋은데, '간판'에 '개칠'한 인물? 그게 정말 '마스터베이션'이죠"라고.

오늘 오전만해도 들어갈 수 있던 윤석화씨 홈페이지가 접속이 되질 않는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극배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윤석화씨나, 우리나라 연극계가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윤석화씨라는 스타와 나 사이에 난 관계의 상처가 빨리 치유되고, 더 적극적으로 그녀의  팬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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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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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씨의 경우 어제 모 TV 뉴스에서 인명정보 사이트를 보여주었는데, 최종학력란에 소위 일컬어지는 뉴욕대로 City college of New York이라고 적어 놓았더군요. 근데 뉴욕대라고 일컬어 질 수 있는 정확한 곳은 NYU(New York University)이지요. 아무리 excuse를 해도 뉴욕주립대(SUNY)와 뉴욕시립대(CUNY)는 NYU와는 다른 시스템의 다른 학교입니다. 더더구나 City college of New York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City college, City University of New York이라면 혹시 모를까. 아무튼 영어학교 이름들도 한국와서 고생들이 많아요...후후후
    • 김호
      2007/08/16 17: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직접 미국에 가서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다 알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먼저 명확하게 차이점을 밝히는 것이 가장 기본이겠지요. 미국 대학들...요즘 예일대학교에서 뉴욕대학까지 정말 고생많아요:)
  2. 권태연
    2007/08/16 21: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선 블로그, art of apology 개설을 축하드립니다! 처음에 주소만 보고 홈페이지인줄 알았는데, 블로그였군요.^^; 앞으로 '사과의 기술'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 기대해봅니다.

    윤석화씨의 학위 고백 사건을 보면서 팬의 한사람으로서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며 살았을까 하는 연민의 감정도 교차하네요. 특히,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고백은 타이밍 면에서 고백의 순수성을 의심받기 충분한 좋지 않은 시점인 것 같아요. complete apology를 위해 단순히 학위위조 사실에 대한 소극적 차원의 사과 뿐 아니라 사과의 의도와 내용 면에서도 좀더 세심한 고려가 있어야 했다는 지적에 매우 공감합니다.

    그리고 사과라는 bad news를 전할 때는 '원샷'해야 한다는 말씀도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어요. 약간 다른 얘기로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소비자 효용을 이야기할 때, 이익은 나누고 손실은 합쳐서 제공하는 것이 사람들의 효용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하던데, 이는 사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과 역시 관계회복 이전에는 어디까지나 부정적인 뉴스인 만큼, 한번에 깔끔하게 하는 것이 듣는 이의 불쾌감을 한번에 끝내는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 김호
      2007/08/1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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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연. 좋은 피드백 감사합니다. 이익은 나누고, 손실은 합치라... 맘에 드네요.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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