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방송사인 BBC는 과학잡지 Knowledge를 펴내오고 있는데요. 이번달에 한국판을 새롭게 창간합니다. 과학동아 기자를 거쳐 사이언스타임즈에서 활동하던 김홍재 편집장님이 BBC Knowledge 한국판 발행인겸 편집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잡지에 KAIST에서 현재 제 지도를 맡고 있는 정재승 교수님(바이오 및 뇌공학과)과 함께 '사과의 기술'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서점에 나온 창간호에는 "사과는 리더의 언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으며, 다음 호에는 "미안해...는 사과의 반쪽"이라는 칼럼이 실릴 예정입니다. (오늘 오전에 다음달 원고를 넘겼습니다)

위기커뮤니케이션의 핵심으로서 사과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현재 KAIST에서 제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 주제이기도 합니다. 정재승 교수님의 소개와 배려로 이번에 함께 흥미로운 칼럼을 쓰게 되었는데요. 그동안 주로 컨설팅 경험에 의해 쓰던 글과는 달리, 과학적 연구 결과를 찾아, 풀이해가며 쓰는 작업이 흥미롭기도 하고, 또 과학자인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사과의 기술에 대한 과학적 탐구 여정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p.s. 블로그를 통해 칼럼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잡지사의 사정도 있어, 지금은 공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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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A가 한 과자업체 B에서 일한다고 치지요. 하루는 신문을 보니, B업체에 대한 보도가 나왔습니다. 안 좋은 사건이었다고 치지요. B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야, 어떻게 된거니?" 만약, 그 친구가 기사에 나온 B社의 입장을 그대로 읽어주었다면 어떨까요?

지난 8월 14일 식약청의 발표언론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오리온이 미국에서 수입한 허쉬(Hershey) 초콜릿의 유통기한을 변조했다가 적발되었습니다. 자주 사먹는 것은 아니지만, 허쉬 초콜릿을 좋아하는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는데요. 문제는 언론 보도나 홈페이지에서 (주) 오리온의 입장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하여 오리온의 홈페이지 고객만족센터에 문의를 하였더니 아래와 같이 답변이 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론 보도(한겨레)에 따르면, "식약청은 '고의적인 유통기한 변조로 판단된다'며 업체를 사법기관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되어있는데, 오리온으로부터 받은 답장에는 "사건의 경위와 관계없이... 책임을 통감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간편하게' 답변하는 것이 이해는 갑니다. 위기 대응에서는 전통적으로 답변 메시지를 길게 하지 말 것이며, 괜히 부담스럽게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론에도 기사가 나갔는데,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까지 한 소비자들(그 중에는 저와 같은 블로거들도 있겠지요)에게는 '의례적인' 사과를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왜 그럴까요? 위기 커뮤니케이션 1.0은 기본적으로 public communication, 즉, 공중에게 1 대 다(多)의 패러다임에서 메시지를 작성합니다. 하지만, 위기 커뮤니케이션 2.0 (제가 Cool Crisis Communications이라 부르는)은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미디어(personal media)를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personal communication이라는 성격을 메시지 디자인에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지요. 물론, 블로거들과의 대화는 전통적인 personal communication이라기보다는, 세상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public communication이 함께 혼재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 포스팅 맨 위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위기 대응 메시지를 친구사이의 전화통화처럼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그 보다는, (인터넷이라는 공개된) 무대위에서, 친구(블로거)와 이야기하는 상황 정도를 상상해야 한다고 표현하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오리온이 만약 블로거를 대상으로 한다면, 위와 같은 메시지는 어떻게 고쳐야 했을까요? '사건의 경위'와 상관없이가 아니라, 무엇이 사건의 경위였는지를 밝히고, 대응책에 있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2.0으로서 Cool Crisis Communication에서는 때때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본 글은 hohkim.com에도 함께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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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5일 SorryWorks! Coalition(관련 포스팅: 하나, )의 창립자 겸 대변인인 Doug Wojcieszak와 인터뷰하던 중, 찍은 동영상입니다. 지난 15일 St. Louis의 시내 한 호텔에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그와 지내면서, 많은 이야기와 의견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직, 인터뷰 기사 작성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구요. 우선, 동영상으로 찍은 모습을 여기에 올립니다.

Doug는 현재 미국내에서 Disclosure program이라는 것을 전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주로, 의사나 보험회사, 법조계 등 의료사고에 관여하는 단체들을 대상으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국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원칙이 의료사고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에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과의 기술에 대해 좀 더 깊은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소득 중의 하나였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상세한 이야기는 펼치도록 하구요.

우선, 여기에 올려 놓는 인터뷰에서는 두 가지를 묻습니다. 하나는, SorryWorks! Coalition에 대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회의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Doug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앞으로 SorryWorks!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포함시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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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ly Weeks가 2003년 4월 Harvard Management Update에 쓴 글 <The Art of the Apology>를 링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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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ABC 뉴스 부회장도 하루에 30-40번 들여다 본다는 TVNewser.com (관련기사는 여기를 클릭). 오랫만에 들어갔다가, <No Laughing Matter>를 흥미롭게 읽어보았다. 얼마전 MBC-TV의 엄기영 앵커가 탈레반 사태를 보도하다가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웃는 모습이 보여 곤혹을 치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관련 장면은 아래.



미국의 케이스도 비슷하다. ABC World News Now의 앵커인 Ryan Owens와 Taina Hernandez가 미국 배우인 Owen Wilson의 자살 시도를 보도하면서,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웃어댄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를 끈 것은 다음의 장면이다. 이 방송이 나가고 나서, 시청자나 방송국측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적절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었고, 이틀 후 두 앵커는 방송을 통해 사과하게 된다.





이 장면을 본 느낌은 미국의 시청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인 나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진심어린 사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입에서만 사과가 나올 뿐, 그 마음은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Owen Wilson에 관련된 보도가 아니라, 미국내 다른 민족들에 대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면 어땠을까?

여기에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 사과에서는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둘째, 결국, 같은 맥락이지만, 한국의 기업이 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혹은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사과를 할 경우에는 그 나라의 문화적 맥락, 그리고, 사과를 해야 하는 사건(event)의 맥락을 반드시 고려해서 해야 할 일이다. 지난 번 <The Japanese Tradition: Shazai>에서도 보았지만, 문화마다 사과의 기본정신은 같겠지만, 그 기술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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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의 개념을 설명할 때, 내가 가끔씩 '자랑의 법칙'이라 이름 붙여서 설명하는 것이 있다. 자랑중에서 가장 파워가 떨어지는 자랑은 자기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고, 가장 파워가 있는 것은 남이 해주는 자랑이라는 것이다. PR이 광고보다 더 파워를 가질 수 있는 측면은 바로 제 삼자 효과(third-party endorsement)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책 뒷 표지에 여러 추천사를 늘상 붙이는 것은 바로 이런 예 중의 하나이다.

Influence at Work의
Noah Goldstein이 쓴 <How can we show off without being labeled a show-off?>라는 흥미로운 글(이 글은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면 '화장하고도 화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방법'이라고나 할까?)은 바로 '자랑의 법칙'의 일면을 과학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art of apologia(방어의 기술) 혹은 art of apology(사과의 기술)에서는 반대로 작용한다. 하나의 예를 보자. 아직 사실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조선일보가 특종했다는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외압설로 다시 이 사건이 도마위에 올랐다.

사회부 장상진 기자가 쓴 <기자수첩: 37시간만의 해명, 그는 없었다>를 읽어보면, 이 보도를 위해 수없이 변실장측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37시간만에야 변 실장 자신이 아닌,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자신은 신정아씨 사태와는 관련이 없다라는 '방어'를 했다라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정확히 알길이 없다. 정말로 이틀간 전화 한 통화하기가 힘들 정도로 바빴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랑은 제 삼자(third party)가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사과(apology)나 방어(apologia)는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다.

법정(court of law)에서는 자신이 아니라 변호인이 변호를 해도 괜찮지만, 여론이라는 법정(court of public opinion)에서는 자신이 직접 특정 위기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을 경우에는 스스로 나서서 방어를 하든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 (이는 조직의 위기 상황속에서 CEO가 무조건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 변실장은 개인 자격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변 실장이 이번 사건에서 사과를 하거나 책임질 일을 하지 않았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어서 방어(apologia)를 하려 했다면, 방어의 타이밍(timing)이 늦었고, 채널(channel)을 제 삼자로 썼다는 점에서, 오히려 의심을 증폭시킨 결과를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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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기술(art of apology).

사과까지는 좋은데, 기술이라고 붙이고 나니, 좀 어색한 감도 없잖아 있다. '기술'이란 말이 '조작적'이라는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과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어쨌든,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심이 빠진 사과는 그 어떤 기술로도 진정한 사과로 만들 수 없다. 사과의 기술이 발휘될 수 있는 가장 기본은 진심(sincerity)이다.

위기의 상황이란 관계에 '상처'가 난 상태이다. 사과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상처난 관계를 치유하는(healing) 역할을 할 때이다. 사과의 기술이란, 바로 진심을 바탕으로, 그 진심이 사과를 받는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윤석화씨의 사과를 접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나,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상처가 치유되기에는 다소 사과가 미흡하지 않았나, 라는 점이다.

윤석화씨의 고백을 '사과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난 느낌을 이야기해본다.

1. Timing: 사과의 시점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고백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용서를 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타이밍이 썩 좋지는 않았다(이지영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계 인사들의 학력위조로 검찰까지 나선 시점에서 사과를 한 것에 대해 그 순수성이 충분히 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의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고백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수 있다는 압박이 오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잘못이나 실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과는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자발성이 보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사과를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결국 사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 Complete Apology-Intention: 그렇다면, 학력을 위조했고, 안타깝게도 지난 30년 동안 사과할 기회를 놓쳤고, 예술계에서 학력위조 파문이 일고 있어, 지금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사과의 timing을 놓치고,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달리말해서, 이런 상황(김옥랑씨의 학력위조 파문)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자신은 사과를 평생 안했을지도 모른다면, 그 때는, 자신의 사과행위가 100% 순수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사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윤석화씨가 자신의 사과 타이밍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과의 때가 너무 늦었음을 잠시 언급했다.

"어릴 적, CM송을 부르던 시절에, 철없이 했던 거짓말이 30년 세월 동안 제 양심의 발목을 잡았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고백'의 '때'를 생각했지만... 결국, 용기가 없어 주저하는 사이 이 '때'에 이르게 되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에 나온 윤석화씨 사과문 중)

가정이지만, 만약,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이런 고백을 영영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솔직히, 저의 경우도 남들에 의해 밝혀질까 두려웠습니다. 보다 더 순수한 순간에, 보다 더 순수한 마음에서 사과하지 못한 저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여러분께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3. Complete Apology-Contents: 윤석화씨의 고백이 공개되고 나서, 뉴욕대 학력도 의심을 받고 있다. 그녀의 뉴욕대 학력이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사실이 아닐 경우라면, 사과의 내용이라는 완전성에서도 결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과란 bad news를 전달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bad news를 good news로 전환하는 노력이다. Bad news를 전달할 때는 '원 샷'에 하는 것이 깔끔하다. 즉, 한 번에 모두 끝내서, 뒤에 '찜찜한 것'이 사과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에 남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그녀의 '뉴욕대' 학력과 관련하여, 신동아 2005년 5월(통권 548호, 440-457쪽) 기사 <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연출자가 그에게 유학을 권유했다.

'너는 공부를 더 하면 좋겠다. 나는 가끔 너한테 진짜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너는 작품에서 집어내더라. 그런데 우리 사회는 디그리(degree·학위)가 없으면 아무리 옳고 바른 소리를 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너 같은 사람에겐 꼭 디그리가 필요해.'

'연극계에서 제가 알려질 만큼 알려졌을 때였어요. ‘주간여성’ 표지에도 나가고 언론 인터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학부를 4, 5년 다니고 나면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연극을 평생 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미래를 위해 4년이든 5년이든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과감하게 미국으로 떠났죠.'

윤석화는 마침내 뉴욕대 공연학 학사 ‘디그리’를 안고 귀국했다."



지금 기사에 나온 것을 보면, 뉴욕시립대(City University of New York)를 신동아 기사에서 보듯이 뉴욕대(New York University)라고 가끔씩 이야기했나본데,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윤석화가 제대로 이야기했는데, 미국의 대학 시스템을 잘못 이해한 기자가 잘못 썼을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윤석화가 NYU로 인식되기를 바라면서, '뉴욕대'라고 슬쩍 이야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참에 미국에서의 대학 학력을 이야기할 때, 당사자나 기사를 쓰는 기자나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2년간 살았던 위스콘신(Wisconsin)주에 보면, 위스콘신 주립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만 해도, 캠퍼스가 13개에 달한다. (UW System 홈페이지 참조) 일반적으로, 가장 인정받고 유명한 캠퍼스는 그 13개 중 한 곳인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이다. 미국 학력을 이야기할 때, 자신의 캠퍼스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는 본교와 분교를 차별한다는 문제점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미국 대학에 대한 '신뢰'가 많은 곳에서, 자신의 '간판'을 과장하는 풍토를 바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내가 한 학기(first quarter) 마치고 중퇴한 University of Washington(Seattle)이 있는 워싱턴주에는 Washington State University라는 곳도 있다. 모두, '워싱턴 대학'이라고 혼동될만하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리더들이 자신의 미국학력을 이야기할 때, 보다 분명히 이야기하고, 기자들도 괄호를 이용해서라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어떨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간판을 강조하는 부작용도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만약, '뉴욕대' '디그리'에 있어서도 윤석화씨가 과장하거나 속인 부분이 있다면, 이는, 이번 사과에서 모두 고백했었어야 했다. 뒷끝이 없는 보다 완전한 사과를 위해서말이다.

* 여기서, 잠시 관련되는 또 한 가지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 2-3년간 한 병원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그 곳에서 강의 시작 전, 나를 소개할 때마다 "워싱턴 대학 박사"라고 소개를 해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그 때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강하는 의사분들께, 사실을 정정하느라 다소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강의 끝나고나서, 어떤 의사분이 내게 와서 "아, 저도 워싱턴 대학에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까지 사실 정정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강의 시작전에 모두 앞에서 고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혹은, 다른 기관에서는, 강의자로 나를 소개하면서, 박사과정 한 학기 수료한 것을 그냥 "워싱턴 대학 박사과정 수료"라고 소개한 적도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이해하는 수료란 논문만 쓰지 않고 수업(course work)을 모두 마친 상태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이런 경우에도 '한 학기 수료'라든지 하는 식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부의 경우, 자신들의 모임이나 행사에 초대한 사람이나, 취재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의 약력을 과장하는 경우가 있다. 정덕희 교수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는 것 같은데, 당사자인 자신이나, 이를 소개하는 언론사나 타 기관에서도, 정확성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2005년 신동아에 실린 윤석화 인터뷰 기사를 보니, 소제목에 이렇게 나와있다. "내용 좋은데 흥행 안 된 작품? 그건 '마스터베이션'이죠"라고. 이젠, 이렇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자질이 좋은데, '간판'에 '개칠'한 인물? 그게 정말 '마스터베이션'이죠"라고.

오늘 오전만해도 들어갈 수 있던 윤석화씨 홈페이지가 접속이 되질 않는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극배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윤석화씨나, 우리나라 연극계가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윤석화씨라는 스타와 나 사이에 난 관계의 상처가 빨리 치유되고, 더 적극적으로 그녀의  팬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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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호입니다. 이 lab은 위기상황 속에서 리더들의 커뮤니케이션, 특히, 사과의 기술이라는 측면에 대한 다양한 생각의 실험들을 해 나가는 곳 CRISIS Lab: ART OF APOLOGY입니다. by 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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