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감하는 위기(crisis)에 대한 정의 중 하나는 "career defining moment"라는 것이다. 즉, 위기는 한 리더의 커리어를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정지영 전 SBS-TV 아나운서의 경우가 그러하다.

정지영씨와 출판사인 한경BP를 대상으로 다음카페(정지영 대리번역대책)를 통해 집단소송을 주도했던 이창현 변호사가 2007년 5월 29일 카페에 올려 놓은 글에 의하면 이 민사 소송(서울중앙지방법원 2006가합 92054)은 무혐의로 끝났고, 이창현 변호사도 사실관계를 뒤집을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항소도 포기한 상태이다. (다른 참고 까페: 스위트 뮤직박스의 팬까페)

즉,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난 것이다. 법적으로 무혐의 처리가 났는데, 우리는 더 이상 정지영씨를 TV나 라디오에서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잠시, 지난 번 포스팅했던 <Crisis management = Art of Balance>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위기관리에는 크게 두 가지의 측면이 존재한다. 하나는 Operational level(O)이고, 또 하나는 Communication level(C)이다. 사고(Thinking)의 측면에서 보면, O는 legal thinking을 주로 하는 반면, C는 Relationship thinking을 주로 한다. 무엇이 중요한가(What matters)라는 측면에서 보면 O는 our(주로 조직의) logic인 반면, C에서는 Their(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 emotion을 고려한다. 따라서, O에서는 포커스가 법적인 불리함이나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reducing legal risks)이라면, c에서는 피해 당사자의 분노나 실망을 줄이는 것(reducing anger or disappointment)에 집중을 한다. 이러한 다른 두 가지의 접근 방식은 종종 O가 reactive하다면 C는 proactive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communication level crisis management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포인트는 이러한 두 가지의 방식을 놓고, 균형을 잡아 위기 사건을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지영씨는 법적 위기관리에서는 선방했다고 볼 수 있으나, 여론을 대상으로 한 위기관리에서는 실패했고, 이에 따라 career defining moment로서 위기를 맞이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최악의 상황으로 밀고 가고 말았다. (나 역시, 과거 정지영씨 팬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웠던 점이다)

이 사건에서는 다양한 위기공중이 등장한다. 정지영씨, 번역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경환씨, 출판사인 한경 BP, 집단소송을 주도했던 이창현 변호사, 정지영씨의 팬, 정지영씨의 책을 구매했던 사람들.

여기에서는 정지영씨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사과의 기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잠재 위기 요인으로서의 '잘못된 관행'

지난 6월 Canada에서 일주일동안 Art Kleiner의 Scenario Planning 워크샵을 들었을 때, ghost writer로 잘 알려져있는 그에게 정지영씨 케이스를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사례를 물었다. 물론, 정지영씨의 경우는 ghost writing과는 다르지만, 유사한 케이스로 참고해볼 만하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은 ghost writing이란, 특정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책을 낼 수 있도록 writing을 도와주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밝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scenario planning의 교과서격이라 할 수 있는 The Art of the Long View는 이 분야의 전문가인 Peter Schwartz가 저자로 되어 있으나, 그는 책의 Acknowledgments에서 다음과 같이 ghost writers를 밝히고 있다.

...Howard Rheingold and Art Kleiner, the two writers whose labors provided words for my often inarticulate ideas.

결국, 이번 사태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이다. 현재 팔리고 있는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처음부터 공동번역자로 기재를 했다면, 그와 같은 위기까지 불러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투명성의 부재와, 잘못된 관행이 위기사건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일을 하다보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다. 정지영씨의 경우, 출판사의 주장처럼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을 가능성, 혹은 출판사에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응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잘못된 관행이라는 것이 어느정도는 있기에, 이를 위기로 발전할 것을 미리 예방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다. 그래서, crisis planning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끄집어 내기 위해 worst-case thinking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위기관리의 원칙 중 하나는 머피의 법칙이다.

따라서, 정지영씨로서는 애초에 공동번역이라는 사실을 만약 알았다면, 그 시점에서 비록 관행이지만, 투명하게 밝히는 쪽을 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이슈관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매번 이런 잘못된 관행을 혼자서 거부하고 바른 길을 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분야나 잘못된 관행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정지영씨가 그러한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관행에 따라서 했던 일이 위기로 발전했을 때, 과연 어떻게 위기관리를 했어야 헀을까?라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자랑의 법칙과 반대인 사과의 법칙

지난 번 여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랑은 제 3자가 하는 것이 파워가 있는 반면, 사과는 당사자가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정지영씨의 경우,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출판사와의 입장 조율등의 문제가 있었겠지만, 출판사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건 초기부터 전면에 나서서 언론이나 공중들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했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누가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당사자가 나서서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두말할 나위없이 스타MC인 정지영씨이다.


3. 타이밍(timing)의 문제

옛 선현들의 지혜가 담긴 '침묵이 금이다'라는 말을 위기관리에서 무조건 적용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특히, 위기사건에 대한 의혹이 언론을 통해 터져나올 경우에는 대부분 빨리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한겨레의 <정지영씨 오랜 침묵이 사태 키웠다>라는 기사가 잘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대리번역 의혹이 제기된 11일 이후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던 정씨와 정씨의 소속사 티엔엔터테인먼트는 논란이 일어난 지 일주일 이상 지난 19일 밤 11시께 전격적으로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고 인세로 받은 8100만원을 환원하고 물의 빚은 점을 사과하는 등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비로소 밝혔다. (구본준, 김소민 기자)

결국, 위기상황에서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것은 여론에 이끌려 어떤 조치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 먼저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는 과감성이 필요한 것이다.


4. 사과나 입장 표명은 구체적이어야

정지영씨가 위기관리의 기회를 놓치는 점은 또 발견된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그녀가 진행하던 스위트 박스를 통해, 사건의 경위나 자신의 명확한 입장 표현은 없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제 오늘 많이 놀라고 많이 걱정하셨죠,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하루종일 저도 참 답답하고 많이 속상했었어요"

"그래도 감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오랫동안 함께했던 달콤('스위트 뮤직박스') 가족들을 실망시킬 일은 없을 거라는 겁니다"

당시, 의혹이 발생하고 나서, 정지영씨의 방송, 특히, 자신이 DJ로 있는 방송은 위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신문등과 같은 언론들이 모두 이 방송을 듣고 관련 코멘트를 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기자회견이 아니라 자신이 혼자 방송하는 것이기 때문에, 메시지 콘트롤(message control)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애매한 입장 표명으로 일관, 위기관리의 기회를 또 다시 놓치고 만다.

지난 번 여기에서 제시했던 사과의 기술 세 가지 요소에 따라 살펴본다면 정지영씨는 사건 초기에 방송을 통하든, 기자회견을 통하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Accceptance of Errors & Mistakes:
관행이 위기로 발전되었을 경우에는, 관행을 빌미로 삼아 방어로 일관하는 것보다는, 관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송하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의혹이 일고 있는 부분에 대한 사실을 먼저 밝히는 것이 좋다.

2. Acceptable Apologia:
반성과 사과를 한 뒤에는 자신이 방어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정지영씨의 경우에는, 어느 것이 진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한경 BP의 입장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말로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자신 외에 또다른 번역자가 있었다는 점은 몰랐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번역을 했던 원고 원본을 제시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일정부분 입증을 할 때, 효력을 얻을 수 있다.

3. Actions for the Affected Audiences
정지영씨는 일주일이 넘어서 출판사로부터 받은 8100만원을 환원하겠다고 하면서 사과를 했다.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하게 사과하고, 사실을 밝히고, 최소한의 보호하고 싶은 진실에 대해서는 방어를 하고, 그리고 환원이나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방송에서 하차를 하겠다고 밝혔더라면, 여론은 다르게 흘렀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출판업계의 잘못된 번역 관행에 대한 비난쪽으로) 그리고, 그녀는 추후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여론환경을 보다 더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번역 관행이 얼마나 제대로 잡혔는지,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 번역업계의 잘못된 관행은 오마이뉴스가 사건 당시 단독 인터뷰하여 보도했던 기사 <내가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번역했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증언으로부터 어두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방송되었던 맛대맛 프로그램에서 어색한 표정의 정지영씨가 안쓰럽게 보였던 기억이 있다. 위기는 꼭 법적인 잘못을 저질러야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위기 사건이 발생하면 법적으로 보호만 한다고 위기관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균형의 기술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위기상황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토론은 경영진-변호사-위기커뮤니케이션전문가라는 삼각 구도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위기관리는 이처럼 실패로 끝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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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호입니다. 이 lab은 위기상황 속에서 리더들의 커뮤니케이션, 특히, 사과의 기술이라는 측면에 대한 다양한 생각의 실험들을 해 나가는 곳 CRISIS Lab: ART OF APOLOGY입니다. by 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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